왜 하나님께서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이 땅에 허락하셔서 한국인들의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주신 것인지는 철저하게 검증되어야 한다.
이 글에서 정동수의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을 중략하여 <흠정역>이라 부르겠다. 그는 "없음이 없는 성경"이라는 모토로 장사를 해왔다. 사실 이 슬로건과 변개되지 않은 성경의 시작은 1994년에 <한글킹제임스성경>과 함께 이송오 목사님이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겉모습만 기독교인,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이 없는 자들은 <흠정역>에 들러붙었다.
왜 그러냐니까,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손에 쥐고 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성경대로 실행하는 사람들이라, 형제들은 거리에서 설교하고 성도들이 개인구령하며 전투적이고 생명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마귀의 공격과 이단 정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데에 열을 다하는 모습이 사실 "너무 부담스러워서" 중도라 불리는 <흠정역>에 가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리고 조금 자기 신앙에 위안을 가져보려고 "애국"에 힘써서 "정치적 영향력"에 우선순위를 두고 집중을 다한다. 하지만 이는 스스로 위안을 삼는 일일 뿐이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은 아니다.
<흠정역>은 킹제임스성경에서 올바로 번역했다고 주장하며 "없음이 없는 성경"으로 공격적인 선전을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 실체는 없음"만" 없는 개역한글판에 크게 다르지 않은데, 왜냐하면 정말 중요한 구절에 대해서 킹제임스성경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개역한글판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또한 침례에 의한 중생을 가르치는 성서가 <흠정역>이다(벧전 3:21). <흠정역>, <윤경원의 표준역>은 성경이 아니라 성서(sacred book)에 불과하다. 그들 스스로가 자기들이 번역한 성서가 성경이 아니라고 하기 때문이다. 번역자들이 자기 번역본에 대한 믿음도 없다. 그들의 한국어 번역본은 성경 자체가 아니라 "성경에 대한 일종의 참고할 기록"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성서에는 "성경"대신 "성경 기록"이라 대체해서 변개해놓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졸작에 성경이 아니라는 표기를 해두신 것이다.
특히 오늘 다뤄볼 아래와 같은 구절에서 <흠정역>의 실체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글킹제임스성경 출애굽기 3:1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곧 나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같이 말할지니 '나이신 분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라." 하시니라.
<KJV>
And God said unto Moses, I AM THAT I AM: and he said, Thus shalt thou say unto the children of Israel, I AM hath sent me unto you.
<정동수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 2022년 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곧 스스로 있는 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스스로 계신 분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느니라, 하라, 하시니라.
<개역한글판>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자,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3:14을 쓰실 때에, 자신을 계시하시는 위대한 이름 "나는 곧 나니라.", "I AM THAT I AM"을 주셨다. 이는 신약의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성을 나타내실 때에 쓰시던 말씀이다. 이 권위의 말씀이 구약의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I AM"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신약의 "I AM"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같은 분이시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쓰여진 문장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나는 그 생명의 빵이라."(I AM), "나는 그 문이라."(I AM), "나는 선한 목자라."(I AM),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I AM)고 계속해서 말씀하셔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셨다.
특히 주님께서 겟세마네에서 잡혀가실 때에는 "내가 그니라."(I AM) 이라 말씀하셨는데, 그 때에 이 말씀의 위엄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주를 잡으러 왔던 무리와 유다가 뒤로 물러서서 땅에 엎드리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위대한 이름의 진리를 아주 간교하게 덮어버린 성서가 <흠정역>이다. 위의 대조 인용을 보면 알겠는가? 정동수는 한 쪽에 <한글킹제임스성경>과 한 쪽에 <개역한글/개정판>을 놓고서 짜깁기 한 것이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킹제임스성경의 맥을 잇는 것처럼 거짓말한다.
차라리 이 구절에 있어서는 <윤경원의 표절역>이 더 낫다. 적어도 이 위대한 구절에 있어서 <표준역>은 <한글킹제임스성경>을 표절하여서 이 구절에서 만큼은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이건 정동수의 흠정역이 표절역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있는 자"라는 개역한글판의 번역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이는 중국어 성경으로부터 왔지, 영어 킹제임스성경이나 맛소라 히브리 원문 계열의 보존된 성경들로부터 나오지 않았다. 위클리프 성경도, 틴데일 성경도, 그레이트 성경도, 비숍 성경도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 따위는 없다.
중국어 성경 역시도 버전이 여럿 있지만, 보통 아래처럼 써있다.
<Chinese Union Version>
我是自有永有的
我是 라는 한자어는 "나는"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뒤에는 전혀 원문에는 존재하지 않는, 엉뚱한 의역으로 들어가 있다. "自有永有的" 스스로 있고 영원히 있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완전히 의역이다. 원문을 최대한 지키려는 직역의 원칙이 없다. 이는 "스스로 존재하는 이"라고 하는 범신론적 사상에서 온 것이다(self-existence). 이는 뉴에이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뉴에이지 성경 역본들> 게일 립링거, 말씀보존학회, 344p 참고). 독립된 신격으로 존재하는 한 영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이가 자신들 안에 내재한다고 믿으며 자신들 스스로가 "신"의 경지에 다다른다고 믿게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내가 하나님이다"라는 개념을 지지하기 위해 나온 것이 "스스로 있는 자"라는 표현이다(형이상학적 성경 사전, Metaphysical Bible Dictionary - 게일 립링거 자매가 이 책의 내용을 인용해서 쓴 것이다).
I AM THAT I AM을 한자어로 제대로 번역한다면 我是所我是가 적절하다. 그래야 신약이 번역될 때에도 주님의 요한복음에서 자신의 신성을 증거하는 말씀들과 맞아 떨어질 수 있는 번역이 된다.
그렇다, 중국어 성경은 본래 처음 카톨릭 예수회 신부들이 중국에 들어가 번역을 시작했는데, 당시에 서양 종교에 대한 반감을 줄이기 위해서 의역을 했던 의역 성경이었다. 그것을 저본으로 삼아 많이 참고하여서 초교파적인 런던 선교회의 로버트 모리슨의 문리어역이나 중국어 대표자역에서 번역을 한 것이다. 세상에 카톨릭 성서를! 침례교 선교사였던 마쉬맨(인도의 윌리엄 캐리와 함께 사역했던)의 중국어 성경은 보존된 성경의 계열이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초교파 성서가 받아들여졌다. 이는 변개된 성경의 계열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처음 <한글구역성경>이 저본으로 삼은 중국어 성경이고 결과적으로 <한글구역성경>이나 그 후에 개정된 <개역한글성경>과 그 뒤를 잇는 <개역개정판>은 모두 "의역" 성경인 것이다. 쉽게 말해서, 원문과 보존된 계열의 히브리, 헬라어 원어를 무시한 그 나라 문화와 풍습대로 철학적 사조를 첨가하고 가미한 변개된 성경이 된 것이다.
이 실체를 보고서도 <개역한글판>을 성도들의 평범하고 일반적인 믿음 곧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겠는가? 당신의 믿음의 반석은 무엇인가? <개역한글판>에 한쪽 발 담그고 보존된 성경인 척하는 <흠정역>인가? 만일 그렇게 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흠정역>을 치워버리라.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온 보존된 성경의 원문 계열이다. <흠정역>의 번역자 정동수의 태도는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이 좋은 성경이라고 말한다. 이는 그의 태도가 미적지근하고 적당히 양다리 걸치는 모양새인 것이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시작부터 타협하지 않고 시작했다. 그래서 대형 장로교 교단들로부터 위험한 이단으로, 대적으로 낙인 찍히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야 정동수는 이단 판정을 받고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인 "이단 선배들"의 사우나에 들어온 것이다. 너무 뜨거워서 엉거주춤하게 사우나실 문 옆에 서서 나갈 기회만을 옅보는 모습이다.
대형 장로교 교단들이 겁나는가? 왜 겁나는가? 그들은 신사참배하던 양반들 아닌가? 고신교단은 안 그랬다고? 고신은 지금 김문훈 교단 총회장 후보라는 자가 얼마나 더러운 욕설쟁이인지, 어떻게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지 보지 못하였는가? 그런 교단이 두려운가? 아직도 그런 교회들을 다니는가?
<개역한글판>의 열매는 일제 강점이었고, 6.25전쟁이었다. 변개된 성경이 들어오고 주어진 것은 영적 암흑이었고 더러운 대형 교단의 횡포였다. 극단적 칼빈주의의 부패한 누룩과 은사주의자들의 광란이 그 열매였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그 가운데에 그나마 주님을 믿고 따를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나올 줄 아시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제대로 분별하라.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한다. 마귀는 항상 성도들을 속이려고 가장하는 자들을 보낸다.
*내용 추가
정동수 자신은 웨이트 박사의 글을 인용하면서 형식적 일치/동적 일치 번역을 논했는데, 거기에 분명히 동적 일치 번역은 "마귀짓"이라고 써놨다(https://www.keepbible.com/KJB2/View/2WH?page=5 , d번을 참고). 그래놓고 자신이 동적 일치를 따라가면 어떻게 하는가? 본인이 본인을 마귀짓을 했다고 말하는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